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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
에디슨

에디슨은 미국의 발명가이자 사업가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전신인 '에디슨제너럴 일렉트릭'의 설립자다. 그리고 자수성가로 가장 성공한 근성가 중 한 명이다. 일명 발명왕. 본인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함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중음악, 대중예술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에디슨 생애

1847년 오하이오주밀란에서 태어나 미시간주 포트 휴런에서 자랐다. 에디슨은 어린 시절부터 만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당시의 주입식 교육에 적응하는데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정규 교육을 받은 것은 3개월뿐이었으나 결혼하기 전에는 교사로 일했던 어머니의 열성적인 교육 덕에 점차 재능을 발휘하게 되었다. 중앙교육연구원에서 펴낸 에디슨 전기에 따르면 에디슨의 어머니는 아들의 재능을 생각해서 직접 실험을 할 수 있는 과학책을 사 주었다. 전신기 특허로 큰돈을 번 그는 1876년 세계 최초의 민간 연구소로 알려진 멘로파크 연구소를 세워 발명을 계속하였다. 그의 발명은 굉장히 많아서 특허의 수효만도 1,300여 개나 된다. 에디슨은 1874년 자동 발신기, 1877년 축음기, 1879년 송신기, 1880년 신식 발전기와 전등 부속품을 개발했고 1881년 전차의 실험을 했다. 1882년 발전소를 건설했고 1888년 영화의 제작방법을 알아냈다. 1895년 광물을 가려내는 방법, 1900년 시멘트 공업의 개량, 1909년 엔진형과 축전지를 개발했다. 흔히 노력형 천재라고 알고 있으나 의외로 상당히 틀린 부분이 많다. 이 중 가장 높게 평가되는 부문은 역시 도시의 밤을 환하게 했다는 것이다. 전구의 발명은 발전, 송배전 부문의 발전을 가져오게 했고 각 가정마다 전기가 들어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전구가 조선에 들어오면서 경복궁 향원정에서 시작하여 경복궁 전체에 전기가 들어왔다. 1929년 82세 백열전구 발명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연설을 하고 난 뒤 병을 앓게 되었다. 데이슨은 그 이후 미국 뉴저지주 웨스트 오렌지 자택에서 병상에 누워서 지내다가 1931년 10월 18일에 향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열전자 방출

열전자 방출은 전하 운반자가 열에 의해 위치 에너지 장벽을 넘어 표면에서부터 흐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열 에너지가 전하 운반자에게 그것을 붙잡고 있는 금속의 에너지를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다. 이때 붙잡고 있는 에너지란 것은 일함수이다. 전하 운반체에는 이온이나 전자가 있는데 열전자라고도 한다. 방출 후에 방출된 전하와 양은 같고 부호는 반대인 전하가 방출된 지역에 남게 된다. 그러나 배터리와 연결이 돼 있다면 방출체에서 전하가 방출됨에 따라 전하가 공급되고 남아 있는 전하가 배터리를 통해 공급되는 전하와 상쇄된다. 열전자 방출의 전형적인 예로써 진공상태에 있는 뜨거운 음극에서 방출되는 있으며 이것을 에디슨 효과라고도 한다. 음극은 주로 금속 필라멘트나 탄소화물 붕소화물 등이 쓰인다. 1000K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현상들을 다루는 학문을 열이온학이라고 한다.

 

제네럴 일렉트릭

1878년 설립한 전기조명 회사를 모체로 성장한 세계 최대의 글로벌 인프라 기업이다. 전력, 항공, 헬스케어, 운송 등의 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뉴욕의 주 사무소는 록펠러 센터의 30 록펠러 플라자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붕에 있는 돋보이는 GE 로고 때문에 GE빌딩으로도 알려져 있다. NBC의 본사와 주요 스튜디오도 이 건물에 입주해 있다. 자회사인 RCA를 통해서 그 건물이 1930년대에 건축된 이래 이곳과 인연을 만들어왔다. 중전기기와 가정용 전기기구를 모체로 원자연료 제트엔진 원자력발전설비도 제조한다. 세계 각국에 자회사 계열회사가 있다. 1892년 4월 15일 설립되었는데 전은 1878년 설립한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회사이다. 생산량의 상당량을 미국 국방부에 납품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의 스네크마와 합작하여 항공기용 제트엔진 제조업체인 CFM 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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