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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김연아-곽민정-트리플악셀

피겨스케이팅은 개인, 2인조 또는 집단이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 뒤에 활주 하며 갖가지 동작으로 율동의 아름다움을 겨루는 경기로 '빙상의 예술이라고도 하며 동계 올림픽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겨스케이팅 경기 종류

싱글은 각각 남자부문과 여자부문이 있으며 점프, 스핀, 스텝 시퀀스, 스파이럴 등의 요소들을 프로그램에서 실행한다. 페어는 남자와 여자의 혼성으로 구성된다. 페어에서는 하나의 요소를 같이 실행하기도 하며 남자가 여자를 점프할 수 있도록 던지는 드로우 점프, 다양한 잡기와 자세로 남자가 여자를 머리 위로 올리는 리프트, 두 선수가 공통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페어 스핀, 남자가 축이 되고 여자가 주위를 도는 데스 스파이럴 등 페어에서만 가능한 요소들을 실행하기도 한다. 아이스 댄싱은 남자와 여자의 혼성으로 구성된다. 이 때문에 부부, 부녀, 남매, 모자 선수들로 구성되기도 한다. 아이스 댄스는 서로 가까이 잡고 음악에 맞추어 복잡한 기술을 실행한다. 아이스 댄스의 리프트는 어깨보다 높으면 안된다. 싱크로나이즈드스케이팅은 12 ~ 20명의 혼성 그룹을 이룬다. 이는 대체로 그룹의 대형의 정확성과 대형 사이의 복잡한 변형에 중점을 두는 단체 아이스 댄싱과 유사하다. 기본적인 대형은 휠, 블록, 라인, 서클, 인터섹션을 포함한다. 밀집 대형과 팀의 일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이러한 요소들 간에 선수들의 발놀림을 더욱 어렵게 한다. 컴펄서리 피겨는 선수들이 날을 이용하여 여러 개의 원과 8자, 또는 유사한 모양을 빙상에 그리는 것이다. 정확도와 모양의 분명함, 깨끗한 정도, 회전의 원이 제 위치에 있는지 여부를 판정한다. 현재는 거의 행하여지지 않으며 미국에서는 1999년에 전국대회 규모로서는 마지막으로 개최되었다. 스페셜 피겨는 얼음 위에 그려진 정교한 무늬 자국을 따르는 것으로 스케이팅의 초기에 흔히 행하여졌으며 올림픽 종목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아크로바틱 스케이팅 또는 '빙상 곡예' 또는 '익스트림 스케이팅'은 곡예의 기술과 예술적인 체조 기술, 피겨스케이팅을 합친 것이다.

초창기

문헌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한민국에 서구식 스케이팅이 처음 도입된 것은 대략 189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초반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정리한 '한국의 피겨스케이팅 100년사'에는 남녀가 스케이트를 타며 손을 잡았다 놓았다 재주를 부리는 것을 황후가 불쾌해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도입 초기부터 페어나 아이스 댄스와 비슷한 것이 알려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1920년대 중반 최초의 피겨스케이팅 클럽이 만들어지며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피겨 스케이팅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1925년 전조선 빙상대회에서 스피드 경기 중반 피겨 시범경기가 열리면서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국내 공식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그 수준은 후진성을 면치 못했고 얼어붙은 한강이나 대동강에서 펼쳐진 스케이트 경기는 3만여 명이 구경하러 몰릴 만큼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대부분 스피드 경기에 국한돼 있었다. 이후 1964년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이 개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선수들이 배출되기 시작했고 일본에서 돌아온 코치들 덕에 기술적으로도 도약했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이광영과 김혜경, 이현주가 1968 그르노블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면서 올림픽 무대에 첫 발을 디뎠고 이후 동계올림픽 출전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에 출전했던 신혜숙과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의 변성진 등이 대표적으로 이들은 비록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후 오늘날에도 '대한민국 1세대 피겨 선수'로 불리며 국가대표 코치 등을 역임하면서 꾸준히 선수들을 양성해 왔다.

김연아의 등장

그렇게 19세기 후반 스케이트가 처음 한국에 도입된 이후 늘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피겨 여왕'김연아'의 혜성 같은 등장으로 단숨에 세계 무대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세계 피겨계에서도 피겨의 살아 있는 전설, 여자 피겨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 그녀이지만 연습할 수 있는 변변찮은 선수전용 아이스링크 하나 없는 한국이라는 척박한 토양에서 김연아가 나타난 것은 충격적이었다. 국가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슈퍼스타 김연아의 일거수일투족은 아사다마오와의 라이벌리, 2014 소치 올림픽 판정 논란 등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며 그녀가 선수생활을 마감할 때까지 전 국민이 그녀의 피겨 스케이팅 경기를 지켜볼 정도로 큰 화제가 되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선 대개 피겨 스케이팅하면 여자 싱글이 가장 유명하다. 여자 싱글도 김연아 등장 이전까지는 세계선수권 참가에 의의를 두는 상황이었으나 김연아 이후 인지도가 많이 향상되어 매년 1~2명씩 세계선수권에 진출하고 그랑프리 시리즈에도 2~3명의 선수를 출전시킬 정도로 그 위상이 올라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는 김연아 없이도 자력으로 2장의 출전권을 획득했다. 김연아 이후 여자 싱글은 일명 '김연아 키즈'로 불리는 유영이 2019-20 시즌 시니어로 올라온 뒤 고난도 점프인 트리플 악셀 점프를 성공하면서 국제대회 메달권에 진입하기 시작했고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유영과 김예림 두 명이 출전해 모두 TOP 10 안에 드는 쾌거를 이뤘다. 더하여 이해인이 2023 피겨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획득해 10년 만에 여자 싱글에서 포디움에 드는 성과를 달성했다. 따라서 김연아가 현역이던 시절보다는 훨씬 선수층이 넓어졌고 실력 역시 세계 수준과 차이가 없는 상황까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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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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